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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니히우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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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당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첫날 시작된 전투.
체르니히우는 러시아에서 키이우로 가는 길목에 있는 우크라이나 북동부의 도시로, 한국으로 치면 서울 북동쪽의 동두천시 정도 위치에 해당한다. 우크라이나군은 개전 직전인 2월 11일에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장비와 보급 상황이 좋은 제 1전차여단[8] 을 배치했다. 우크라이나군은 2022년 2월 기준 단 4개의 기갑여단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를 이곳에 배치했다는 사실은 이 지역이 북부 전선에서 정말 중요한 요충지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2. 경과[편집]
2.1. 1차 전투[편집]
개전 직후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에 동시다발적인 공세를 진행했다. 북쪽의 러시아군은 키이우로 향하는 고속도로가 지나는 체르니히우로 진격했다. 현지 시각 03시 27분(UTC+3), 러시아 공수군 제11근위공중강습여단 소속 대위(Captain) 1명과 상병(Corporal) 1명[9] 이 우크라이나 육군에 항복했다. 영국 국방부에 따르면 체르니히우 방면의 러시아군의 공세는 시외에서 중단되었으며, 따라서 시외에서 전투가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2월 25일, 수미 주 코노토프를 사수하던 우크라이나 육군 제58차량화보병여단이 패퇴하면서 키이우로 가는 고속도로가 뚫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체르니히우까지 위기에 직면하였다.# 러시아 국방부는 체르니히우를 봉쇄했다고 발표하였다.# 체르니히우의 우크라이나 보안국 청사에는 2발의 포격이 가해졌다.#
2월 27일, 영국 국방부는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체르니히우에서 격퇴했다고 발표했다.
2월 27일 영국 국방부는 러시아군이 강한 저항을 피해 체르니히우를 우회하여 키이우 진공을 시도한다고 밝혔다.
2.2. 2차 전투[편집]
2월 28일 체르니히우에서 또다시 격렬한 교전이 있었으나 도시는 여전히 우크라이나군 통제하에 있다고 한다.
3월 1일, 벨라루스군이 러시아군의 증원 병력으로 이곳에 파견되었다는 외신 보도가 들어왔다.# 그러나 얼마 후 벨라루스군의 개입을 부인하는 보도가 또 이어서 나왔다.#
3월 7일, 체르니히우와 지토미르의 석유저장고가 공격받았다.#
3월 10일, 체르니히우 시가 러시아군에 포위된 상태에 놓였다.#
3월 25일, 러시아군이 체르니히우를 포위하려 했으나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으로 결국 실패했다.#
3월 26일, 체르니히우 시당국은 체르니히우가 러시아군의 공습, 포격으로 폐허가 됐다고 밝혔다.#
3월 29일, 러시아 국방부는 키이우, 체르니히우에서의 군사공격을 대폭 줄이겠다고 밝혔다.# 공세종말점에 도달해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을 받고 있어 승리할 확률이 희박한 북부 전선 대신 동부나 남부에 전력을 집중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후 포브스의 기사에 따르면 이곳을 지키는 제1전차여단이 러시아군을 상대로 엄청난 활약을 펼친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1달간의 체르니히우 포위전에서 파손이 확인된 전차는 단 2대 뿐이며, 확인되지 않은 손실된 전차들도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즉각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수가 적을 것이라는 것이 포브스의 주장.
4월 1일, 체르니히우가 키이우쪽과 연결됨에 따라 포위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놀랍게도 제1전차여단은 몇 주간의 공성전을 통해 많은 T-64를 보존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1전차여단은 업그레이드된 엔진과 장갑을 갖춘 최신 T-64BM을 사용하는 몇 안 되는 부대 중 하나입니다. 분석가들은 2대의 T-64BM만이 파괴되었음을 확인했으며, 둘 다 하르키우에 있는 우크라이나 육군 전차 학교에 속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제1전차여단이 전차를 잃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단이 사진 증거를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전차를 잃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10]
-포브스, 3월 31일 Ukraine’s Best Tank Brigade Has Won The Battle For Chernihiv 中
4월 4일 기준 우크라이나 북동부 지역에서 러시아군이 전면 철수함에 따라 체르니히우 역시 수미 지역과 함께 완전히 우크라이나의 영향권 안으로 돌아왔다.
4월 16일 우크라이나 철도공사에서, 체르니히우의 철도를 재연결했다고 밝혔다.
5월 17일 러시아군이 체르니히우에 미사일을 발사해 8명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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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크라이나어[2] 러시아어[3]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4] 우크라이나 육군 북부작전사령부 사령관[5] 체르니히우 시장[6] 제1전차여단장[7] 러시아군 중부군관구 사령관[8] 돈바스 전쟁에서도 활약했으며 이후에도 우크라이나군에서는 전차, 장갑차를 제1전차여단에 우선적으로 지원해주었다. 장비나 규모면에선 비교가 안되지만 우크라이나군에서 갖는 비중으로 따지면 제7기동군단급의 위상을 가지고 있는 셈. 체르니히우 전투 종료 이후, 한동안 재정비의 시간을 가진듯 전장에서 사라졌으나 10월 부터 헤르손 일대에 등장했다는 주장이 등장했다.[9] 이는 영문 위키백과 기준 서술로, 실제 대한민국 국군의 계급 기준과는 상이할 수 있음.[10] Incredibly, the 1st Tank Brigade appears to have preserved many of its T-64s through the weeks of siege warfare. The brigade is one of the few users of the latest T-64BM with its uprated engine and armor. Analysts have confirmed the destruction of just two T-64BMs, both apparently belonging to the Ukrainian army’s tank school in Kharkiv. That doesn’t mean the 1st Tank Brigade hasn’t lost any tanks. But it does imply that the brigade hasn’t lost so many tanks that photographic evidence is easy to find.